“나는 원래 미술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근데 어느 날, 그냥 흰 종이에 선 하나를 그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기분이 좀 괜찮았어요.”
이런 말이 그림 수업이 끝난 후 복지관 복도에서 자주 들립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노인복지관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실버 그림 교실이 열립니다.
대부분 60~80대 어르신들인데, 처음엔 다들 “나는 못 그린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 물감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누가 더 색을 잘 섞는지 이야기꽃이 핍니다.
놀랍게도, 그 안에서 나오는 창의력은 생각보다 훨씬 활기찹니다.
“나는 창작에 소질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어느새 그림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옆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1. 그림이 건강을 바꾼다
한 어르신은 “이 그림이 꼭 내 젊은 시절 같아서 자꾸만 손이 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다들 공감하면서 그림을 통해 추억을 되새기고, 서로 공감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림 그리기 활동이 노년 건강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는지는 이미 많은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그림 활동은 노인의 감정 표현 능력을 높이고, 우울증과 고립감 완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손을 사용하는 세밀한 활동은 뇌의 운동피질과 감정영역을 자극해서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줍니다.
그림을 그릴 때 집중해서 손을 움직이고, 색을 고르고, 구도를 잡는 행위는 단순한 여가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추가로, 그림 그리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이는 수면의 질을 개선하고, 전반적인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2. 색을 섞는 시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렇게 떠들다가도 그림에 집중하면 말이 없어집니다.
대신 마음속 소리가 커집니다.
붓을 들고 색을 고르고,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민하는 그 시간이, 사실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한 어르신은 “그림을 그리는 게 이렇게 내 얘기를 하는 거라는 걸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한 분은 “색을 섞다 보니까, 내 마음도 같이 섞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괜히 울컥하게 만듭니다.
그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예쁘게 안 그려져도 괜찮고, 삐뚤빼뚤해도 좋습니다.
오히려 그 솔직함이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연필로 선을 그리는 것도 조심스럽던 분들이, 어느 순간 스스로 색을 칠하고, 자신만의 표현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입니다.
실제로 최근 복지관 미술프로그램 참가자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이 “그림을 그리고 나면 밤에 잠이 더 잘 온다”고 답했습니다.
뇌의 감정 처리 영역이 자극되면서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낮아진다는 점입니다.
이건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는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증거입니다.
3. 나만의 작품이 생기면,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이거 제가 그린 겁니다. 처음이에요, 이런 거 누가 봐달라고 내민 거.”
한 어르신이 전시회에서 그림 앞에 서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눈빛,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작은 그림 전시회, 혹은 가족과의 공유 시간은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줍니다.
심지어 그림이 상품화되어 판매된 경우도 있는데, 이는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쓸모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게다가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찍어 SNS에 올리는 어르신들도 꽤 많아졌습니다.
젊은 세대와 연결되면서 세대 간 소통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손주가 ‘할머니 그림 예쁘다’고 댓글을 남기면, 그 하루가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모릅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잘 그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림 그리기는 결과보다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고, 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보는 '나만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 붓을 드는 그 순간, 삶도 색을 입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몸의 긴장을 풀고, 마음의 언어를 꺼내주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는 표현이 어려워지는데, 그림은 그걸 대신해줍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취미라는 점.
그리고 그걸 통해 다시 삶의 주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그림 그리기가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도, 집에 종이 한 장과 연필 하나가 있다면 오늘 한 번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못 그려도 괜찮습니다.
대신, 당신 안의 감정 하나가 어떤 선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작은 선 하나가, 또 다른 이의 하루를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